본문 바로가기
Experiences/Conference&Seminor

디자인코리아뮤지엄_근현대사디자인박물관을 다녀오다/1편_태동기

by #kate 2020. 2. 6.

작년, 서울 홍대부근에 있었던 근현대사디자인박물관이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있는 코리아디자인센터 지하1층으로 터를 옮겼다는 지인을 통해 박물관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면서 계속 가고싶었었어요. 그러다가 작년하반기 준비를 거쳐 올해 1월에 디자인진흥원에 오픈을 했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은 다들 아시는대로 사진촬영이 불가한데, 디자인 전공자로 박물관측의 배려로  간단한 정도의 촬영만 허락받아 올렸습니다.

전시장에는 총 7개의 섹션으로 분리가 되어 있었어요.

 

 


1. 1876년 - 1910년 태동기

주요포인트 : 공식 태극기 제정 및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의 제작.

초창기에도 디자인은 우리 일상에 스며있었다;

구한말의 태극기 

초창기 시대의 대표적인것은 아무래도 초기의 태극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극기는 시대를 거쳐오며 모양이 조금씩 변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태극기 

https://namu.wiki/w/%ED%83%9C%EA%B7%B9%EA%B8%B0

 

태극기 - 나무위키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기의 제작·게양 및 관리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인식의 제고 및 존엄성의 수호를 통하여 애국정신을 고양함을 목적으로 한다.제3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국기에 관한 사항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제4조(대한민국의 국기) 대한민국의 국기(이하 "국기"라 한다)는 태극기(太極旗)로 한다.제5조(국기의 존엄성 등) ① 모든 국민은 국기

namu.wiki

012
Flags of Maritime Nations

그리고 전시장에는 태극기 이외에도 흥미 있는 책들을 볼수 있었는데요, 만국기가 그려져 있는 책으로 'Flags of Maritime Nations' 이라는 책입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박암종관장님의 개인 소장품으로 세계적인 유물급의 가치를 가진 책이라고 합니다. 참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시대의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정도로 보관상태나 인쇄 상태가 좋아보였습니다. 이것또한 관장님의 정성이 많이 느껴졌었습니다. 

 

0123

초창기에도 보험증서 같은 문서들이 있었는데, 세로 쓰기 형식이지만 이때의 문서가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편집디자인의 기초가 되고 있는거 같아서 신기하고 또 여백을 잘살린 모양이 깔끔하고 너무 예뻤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사진 오른쪽에 보시면 작은 네모 모양 종이가 보이시나요? 이건 그시대의 쌈지 바늘(1880년세창양행1))이었는데 실제 보관상태도 너무 좋아서 지금도 쓸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한번더 아크릴판이나 상자로 가려놓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세창양행의 바늘광고 관련

『동아일보』는 1920년 7월 31일부터 8월 8일 사이에, 『조선일보』는 1920년 8월 1일부터 8월 13일 사이에 똑같은 내용의 ‘세창표 바늘’ 광고를 게재하였다. 그러나 이후 우리나라 신문에서 세창 양행 광고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바늘 광고>   
『동아일보』 1920년 7월 31일자에 실린 세창 양행의 바늘 광고이다. 세창 양행은 『동아일보』에 1920년 7월 31일부터 8월 8일 사이에 똑같은 내용의 ‘세창표 바늘’ 광고를 게재하였다.

 

그외 세창양행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광고는 1886년 2월 22일자 『한성주보』 제4호의 17쪽에서 18쪽에 걸쳐 게재된 ‘德商世昌洋行告白(덕상 세창 양행 고백)’으로 시작되는 24행 광고이다. 따라서 이 광고는 한국 근대 광고의 효시이며, 독일 무역 상사 세창 양행은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주'

 

 

(출처: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print.do?levelId=km_020_0050_0040_0010&whereStr=)



그리고 이건 제가 디자인코리아에서도 정말 너무 열어보고 싶은데 손때들이 뭍으면 안될거 같아서 학예사님이 열어서 보여주시는걸로 만족해야 했던 냉장고 입니다.  당시에 너무 냉장고만 믿지 말고 수시로 식품의 상태를 확인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의 냉장기

그리고 포인트로 이야기했던 창간자 박영효 선생님의 '한성순보2)', '한성주보3)'가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이것도 멀리서만 보고왔었습니다.

문서 보호장치좀 해주세요 ㅠ_ㅠ 

그리고 태동기를 거쳐서 정체기로 가면서 가장 달라진점이라면,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문서들에 나타나는 문양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에 빨간색 동그라미부분을 보시면 꽃문양이 일본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것이라고 해서 설명을 들으며 아쉽고 한편으론 좀 화도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장등록증

한가지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주로 태동기와 정체기 쪽에 고문서들이 많고 책자들도 많은데, 안전장치 같은걸 좀 해놓으면 어떨까 하는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디자인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자료들인데, 조명을 직접 쐬고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되면 상태가 좋지않아져 버릴까봐 좀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음회에선 그이후 정체기,발아기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참고

1)세창양행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print.do?levelId=km_020_0050_0040_0010&whereStr=

 

우리역사넷

우리나라에서 광고는 언제, 누가 시작하였을까? 문헌에 등장하는 광고는 고려시대 및 근대 조선시대에 상점들이 가게 이름을 적은 간판을 상점 앞에 걸어 놓은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개성의 상점들은 광덕(廣德), 통상(通商), 자양(資養), 존신(存信) 등의 상호를 썼다고 한다. 명확한 근거는 없으나 상거래가 시작된 시대부터 방(榜)을 통하여 물품을 소개하거나 시장에서 물품을 사라고 외쳤던 행위도 광고의 한 가지였다고 볼 수 있다면 우리가

contents.history.go.kr

2)한성순보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84%B1%EC%88%9C%EB%B3%B4

 

한성순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성순보》(漢城旬報)는 조선 말기인 1883년 10월 31일(고종 20년 음력 10월 1일) 창설된 순간(旬刊) 신문으로, 한국인이 발행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신문이라하나 일종의 관보이다. 민영목·김만식(金晩植) 등이 주재했고, 일본인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角五郞)가 고문으로 있었다. 문장은 순한문(純漢文)이며,[1] 1884년 12월 4일(음력 10월 17일) 갑신정변으로 《한성순보》를 발행하던 박문국이 불타자 12월

ko.wikipedia.org

3)한성주보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84%B1%EC%A3%BC%EB%B3%B4

 

한성주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